'해외여행'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16.05.30 태국군사문화탐방 2일차(비만맥궁전, 아난다사마콤 궁전, 아유타야 유적지) - `16.4.23(토)
  2. 2016.05.30 태국군사문화탐방 1일차(이동) - `16.4.22(금) 1
  3. 2016.05.30 2016년 태국군사문화탐방 출발전 - `16.4.20(수)
  4. 2016.04.15 2016년 태국 해외군사문화탐방 준비-여행설명회용 PPT(후보생 공개용)
  5. 2015.09.07 상해(홍구공원, 박물관, 남경로, 상해옛거리, 외탄야경, 동방명주, 역사박물관), 서안(화청지, 지하궁전, 병마용, 진시왕릉, 성벽, 비림, 서원문거리, 고부, 회족거리) 여행 5일차 - `15.8.28(금)
  6. 2015.09.07 상해(홍구공원, 박물관, 남경로, 상해옛거리, 외탄야경, 동방명주, 역사박물관), 서안(화청지, 지하궁전, 병마용, 진시왕릉, 성벽, 비림, 서원문거리, 고부, 회족거리) 여행 4일차 - `15.8.27(목)
  7. 2015.09.03 상해(홍구공원, 박물관, 남경로, 상해옛거리, 외탄야경, 동방명주, 역사박물관), 서안(화청지, 지하궁전, 병마용, 진시왕릉, 성벽, 비림, 서원문거리, 고부, 회족거리) 여행 3일차 - `15.8.26(수)
  8. 2015.09.03 상해(홍구공원, 박물관, 남경로, 상해옛거리, 외탄야경, 동방명주, 역사박물관), 서안(화청지, 지하궁전, 병마용, 진시왕릉, 성벽, 비림, 서원문거리, 고부, 회족거리) 여행 2일차 - `15.8.25(화) 2
  9. 2015.09.02 상해(홍구공원, 상해박물관, 남경로, 상해옛거리, 외탄야경, 동방명주, 역사박물관), 서안(화청지, 지하궁전, 병마용, 진시왕릉, 성벽, 비림, 서원문거리, 고부, 회족거리) 여행 1일차 - `15.8.24(월)
  10. 2015.09.02 북경,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백두산, 압록강 여행 5일차 - `14.9.3(수)

  태국 여행 2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호텔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오늘도 날씨가 화창하다.  방콕에 올때마다 느끼지만 초현대식 건물과 낡은 건물이 도심 곳곳에 혼재해있어서 이질감이 든다.

 

 

 

 

  호텔에서 조식을 마치고 08:30에 이동했다.

태국은 아유타야 왕조 때 미얀마와 193년동안 전쟁을 치루었다. 남자들이 죄다 전쟁에 끌려가게 되니 3모작을 하는 태국의 농경사회에서 남자의 노동력은 필수조건, 어떻게 해서든지 신분을 속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장남자"의 문화가 조성되었다. 또한 태국은 모계중심 사회로 엄마가 농사와 살림을 담당한다. 태국은 인구의 95%가 가난한 사람들이며, 5%만이 부자이다. 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매우 심하지만 신기하게도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불교의 윤회사상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의 덕" 때문이기 때문에 다음 생애에도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선 선행을 많이 배풀어하기 때문에 부자들은 선행을 많이 배푼다. 그래서 시기와 질투가 없고, 느긋하며 평화롭다. 

 

 

09:00~11:15 비만맥궁전 + 아난다싸다콤 궁전

 

 

비만맥 궁전 매표소 앞에서, 태국의 햇볕은 너무도 뜨겁다. 살이 금방익는다. 따라서 긴팔을 입거나 썬크림은 필수이다.

  태국은 워낙 더운 나라이다 보니 옷차림에 노출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렇게 궁전에 입장할때에는 복장을 다정하게 규제하고 있다. 반바지를 착용한 경우에는 입구에서 빌려주거나 판매하는 긴치마로 하체를 둘러싸야 한다.

 

 

복장이 불량하면 입구에서 근무하는 군인들한테 붙잡힌다. ㅎㅎ

 

 

 

 

 

  반바지를 끝까지 고수하다가 결국 긴치마를 구입한 박정현 훈육관님과 정상준 후보생. 나중에 물어보니 통풍이 안되서 너무도 더웠단다.  

 

 

 

 

  비만맥 궁전(Vimanmek Palace)은 세계 최대의 티크) 건물로 유명한 곳이다. 현지에서 위만멕이라 불리우는 이 고풍스러운 궁전은 '구름위의'이란 뜻이며, 1901년에 완공되었다. 특히, 태국의 위대한 왕중의 하나로 알려진 라마5세가 1910임종전까지 즐겨찼던 곳인 두싯 정원이 안에 있다.

 

 

 

비만맥 궁전 앞에서 단체샷!

 

 

 

 

이번엔 단독샷!

 

 

 

 

  비만맥 궁전을 돌아보고 나서 아난다사다콤 궁전으로 향했다. 비만맥 궁전 관람로를 따라서 나오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Ananda Samakhom Throne Hall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설계사(Architect), 엔지니어(Engineer), 장식가(Painter)들도 모두 이탈이아인들이 담당했다. 외부는 이탈리아 Carrara지방에서 직수입된 대리석으로 장식되었으며, 내부는 총 2층으로 되어 있는데 면적은 약 49.50m x 112.50 m 정도되고, 중앙돔까지의 높이가 약 49.50 m라고 한다. 중앙에 대리석의 큰 돔이 위치하고 주변을 따라 작은 6개의 돔이 둘려져 있는 형식이다.

  현재 라마 9세의 왕비가 일반 국민에게 공개를 하였다.

  참고로 율브리너가 출연한 유명한 뮤지컬 영화 "왕과 나"에 나오는 왕이 바로 라마 5세이다.

 

 

 

아난다사다콤 궁전 앞에서 단체샷!

 

 

 

 

 

단독샷으로 추억남기기!

 

 

 

 

 

태국 현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럽풍의 건물이다.

 

 

 

 

들어가기 전에 물품 보관소에 물품을 맡기고 시건한다.

 

 

 

 

 

  궁전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내부엔 태국의 보석세공기술과 화려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수없이 많은 금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태국 현지에서 가져온 리플릿으로 대체한다.

직접 눈으로 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정말 정교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황금 예술품으로 가득차있다.

 

 

 

11:40~12:15 태국 국립 박물관 관람

  태국은 시내 곳곳에 개들이 돌아다닌다. 태국에 처음왔을때 개에 대한 주의사항이 아주 특별했었다. 개에 대한 태국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2가지이다. 첫번째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사람으로 환생하지 못한 죄인. 두 번째는 석가모니의 모친 마야공주가 석가모니를 낳고 7일만에 사망했는데, 마야부인이 개로 환생하여 석가모니 곁에서 지켜주었다고 한다.

  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박물관이다. 원래 왕의 별궁이었으나 라마 5세 때인 1874년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라마 5세가 선왕인 라마 4세의 유품과 애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마련한 왕실 박물관이었지만 이후 발전을 거듭해 1933년에 국립 박물관이 되었고 현재에 이른다. 태국 전역에서 발견된 예술품과 고대 유물 등 소장품 1,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선사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소장품의 가치뿐 아니라 왕궁이었던 박물관 건물의 미학적 가치도 상당하며 태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입장료는 200밧!

 

 

 

 

직접 돌아보니 명색이 국립박물관인데 내부가 정말 조촐하다.

 

 

 

 

너무나 화려해서 뭐냐고 물어보니...어느 왕족의 장례식때 썼던 상여란다.

 

 

 

 

 

 

 

여기까지 문화재 관람을 마치고 우리의 주목적지 군사박물관으로 향했다.

 

 

 

 

 

  태국의 총, 칼, 여러 무기들과 전투코끼리, 위에 앉은 이는 바로 국왕이다. 태국현지에서 간단히 김교수님의 군사학 특강이 이루어졌다. 태국과 미얀마는 역사적으로, 지금도 마찬가지로 사이가 굉장히 안좋다. 마치 우리와 일본의 관계와도 같다.

 

 

 

 

 

  국립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아유타야 고대 유적지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중간에 바나나 튀김을 맛보았다. 먹을때마다 느끼지만 부드럽고 고소하고 단맛이 아주 일품이다.

 

 

 

 

12:15~13:40 버스로 이동

 

13:40~14:40 점심식사 : MK수끼

  MK수끼는 태국에서 아주 유명한 전골요리점이다. 전국 각지에 200여개소가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 전골요리와 비슷하다. 갖은 고기와 야채, 태국 특유의 향신료를 맛을 낸  다음, 마지막엔 볶음밥으로 마무리 한다.

 

 

 

맛있게 점심을 즐기는 후보생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쇼핑몰 안에서 본 한정판 티셔츠이다. 태국에서 보니 반갑긴했는데, 이걸 사서 입고 한국에서 돌아다닐 일은 없을 듯해서 구매하진 않았다. ㅎㅎ

 

 

 

 

14:40~15:10 아유타야 지역으로 이동

 

  태국엔 일본차가 대부분이다. 한국차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태국의 고속도로와 일본차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태국의 고속도로는 최초에는 한국의 현대, 정주영 회장이 건설했다. 그런데 너무 싸고 잘 건설해 준 나머지 손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후 고속도로 사업은 일본이 따오게 되었는데, 고속도로를 한국보다 더 싸게 해주는 대신 일본 차량 가격의 관세 혜택을 달라고 하게 되서, 태국현지에서 일본차는 한국차보다 30% 정도 싸다고 한다.

 

15:10~16:08 방파인 여름 별장 답사

  17세기 중엽에 아유타야의 왕 프라삿 통이 지은 궁으로 아유타야시대 왕들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18세기 중반에 미얀마와 벌인 전쟁에서 패하여 왕조가 멸망하면서 한동안 폐허가 되었다가 라마4세~5세때 재건되어 지금은 국민관광지로 사랑받고 있다.

 

 

 

 

역시나 복장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아름다운 산책로가 반겨준다.

 

 

 

 

 

인증샷을 남겨야지~^^

 

 

 

 

 

호수와 동서양의 아름다운 건물드리 조화를 이룬다.

 

 

 

 

 

관내 배치도이다.

 

 

 

 

정원에 있는 코끼리 가족들~^^ 실재 코끼리 크기와 비슷했다.

 

 

 

 

 

이질적 분위기의 전망대, 후보생들은 이곳에 의무적으로 올라가서 인증샷을 남겨야만했다.  ㅎㅎ

 

 

 

 

  중국 화교들이 지어서 태국왕에게 바친 중국사원이다. 금 장식과 나무조각이 매우 정교하며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16:05~16:30  왓라이챠이몽콘 사원 관람

이곳은 방콕의 새벽사원의 원형이 된 곳으로 아주 유명하다.

 

 

 

 

 

멀리서도 보이는 탑과 보리수~!

 

 

 

 

 

거대한 와불~! 방콕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다.

 

 

 

 

 

 

이렇게 무더위를 피해서 그늘에서 쉬는 사람들도 제법있다.

 

 

 

 

 

사원엔 제사와 각자의 소망을 비는 사람들이 동전을 던진다.

 

 

 

 

사원내부로 들어가면 직접 절을 올리기도 하고

 

 

 

 

 

벽화를 둘러보기도 한다. 미얀마와 전투를 벌이는 태국 아유타야왕조의 국왕 모습이다.

 

 

 

 

 

아주 유명한 스님이라고 하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

 

 

 

 

 

 

사원을 둘러보고 탑으로 올라간다.

 

 

 

 

 

이렇게 졸업앨범용 사진이 또?

 

 

 

 

 

  왓야이챠이몽콘 사원에 대한 안내간판이다. 이곳을 나와서 부처님 머리로 너무도 유명한 "왓 마하 탓"으로 이동했다.

 

 

 

 

17:07~17:33 왓 마하 탓 관람

입장료는 20밧

 

 

 

 

 

입구의 풍경이다.

 

 

 

 

 

바로 옆에 있는 왓야이챠이몽콘에 대한 홍보간판!

 

 

 

 

 

입구는 다소 사람이 붐비지만 막상 입장하면 넓어서 그렇게 붐비진 않았다.

 

 

 

 

 

태국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바로 이곳이다. 너무도 유명한 "부처머리" 전쟁시 파괴된 불상의 머리를 보리수 나무가 감고 자라서 이런 모양이 되었다. 같은 불교를 믿는다면서 어찌 이런 만행을 저질렀을까? 우습게도 전쟁의 원인은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흰색코끼리 때문이었다. 당시 태국은 흰색코끼를 5마리 보유했었고, 그것을 질투한 미얀마가 코끼리를 달라고 했으나 주지 않았다. 이에 미얀마는 전쟁을 일으켜서 아유타야 왕조로 쳐들어왔고, 이렇게 이곳은 폐허로 변했다.

 

 

 

 

유명한 부처님 얼굴을 올려놓고 인증샷!

 

 

 

 

 

우리 후보생들도 인증샷!

 

 

 

 

해질녁 햇빛과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 묘한 분위기에 취해본다.

 

 

 

 

 

왓 마하 탓을 나가면 바로 왓 프라시산펫으로 연결된다.

 

 

 

 

 

앞선 관광지에 비하면 너무도 허술하기 그지없다. 입장료는 10밧!

 

 

 

 

17:35~17:57 왓 프라 시산펫 관람

 

말그대로 폐허이다. 들개들만이 반겨준다.

 

 

 

 

 

  미얀마와이 전투에서 패배한 흔적이 가득한 왓 프라 시산펫! 이곳의 보존이유는 새벽사원의 원형이라는 점 밖엔 없다. 미얀마에게 습격당했던 아유타야 왕조의 비통함만이 남아있다. 후보생들은 그만큼 국방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7:57~19:35 방콕으로 복귀

19:35~20:50 석식(한식)

 

 

이곳은 태국에서 매우 유명한 한식당이다. 기억을 살펴보니, 몇 년전에 왔었던 곳이기도 했다.

 

 

 

 

 

식당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한 편의점에 잠시 들러서 구경을 했다. 한국 제품이 생각보다 많았으며, 특히 김 과자와 로션이 반가웠다. 태국에 오면 꼭 사가야 한다는 달리치약이다. 벌써부터 후보생들은 쇼핑으로 사재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태국 군사문화탐방 2일차의 하루가 저물었다.

Posted by 강철캡틴

  언제나 여행의 출발은 설레이기 마련이다. 우리 후보생들을 아껴주시는 월드관광 사장님이 이번에도 도와주셨다. 여수에서 13시에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버스에 짐을 실는 후보생들!

 

 

 

 

  다행히 늦지않게 17:30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신이 난 후보생들^^. 모투탑항공사(여행사) 김종임 사장님도 직접 마중나와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출국장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고나서인지 다들 들떠있는 느낌이다.

 

 

 

 

보딩을 기다리며

 

 

 

 

기내에서 상준, 재욱, 환진

 

 

 

 

약 5시간 30분을 타고 태국 수완나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가장 처음 우리를 반겨주는 건...부처님!

 

 

 

 

입국장으로 이동한다.

 

 

 

 

두번째로 다시와보는 태국 수왓나폼 공항이다. 화살표를 따라서 이동하면 된다.

 

 

 

 

이제 다 도착했다.

 

 

 

 

항공편을 보고 여행가방을 찾는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새벽 1시가 넘었다. 외부 기온은 무려 31도!!!

 

 

 

 

우리가 묵을 방콕A-ONE호텔이다. 공항에서 약 30분 걸렸다.

 

 

 

 

 

카운터에서 바라본 로비의 풍경이다. 밤 늦은 시간이라서 한적하다.

 

 

 

 

여행사에서 준비해 준 족발을 로비에 위치한 카페에서 장소 대여료(300밧)를 내고 준비!

 

 

 

 

 

출출한 위장을 맛있는 족발로 달래고나서 방으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태국에서의 1일차를 보냈다.

Posted by 강철캡틴

  올해 해외탐방의 의미는 예년과는 전혀 다르다. 국방부에 정식으로 무관지원 요청을 하고 태국주제 한국대사관에 연락해서 주재 무관의 협조아래 6.25때 파병부대인 2사단 21연대를 직접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대 방문시 증정품에 신경을 써야했고, 우리 학교와 여수의 전통을 고려하여 "거북선"을 준비하기로 했다. 고심 끝에 여수시청에서 영어통역관으로 일하시는 지인분께 부탁하여 직접 문구를 만들어서 주문제작하였다. 제작기간이 1주일 걸려서 시간이 매우 촉박했지만 업체측의 배려로 다행히 출발 2일전에 거북선을 받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여러분의 고귀한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전남대 1051R.O.T.C-

 

 

포장용 박스엔 "필생즉사, 필사즉생"이...

 

 

 

 

 

꺼내보니 파손된 것 없이 무사히 잘 도착했다.

 

 

 

 

 

영어로 된 설명서, 외국 손님께 브리핑용 자료로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게 되어있다.

저렴한 가격과 멋진 로고를 새겨준 업체측(http://www.shopofkorea.com/)에 감사의 메세지를 전한다.

 

 

미리 요청한 고급 포장지를 직접 포장했다. 그리고 태국까지 파손되지 않도록 손수 운반해야 한다.

Posted by 강철캡틴

 

 

 

 

 

 

 

 

 

 

 

 

 

 

 

Posted by 강철캡틴

오늘은 상해, 서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07:00~08:00  기상 및 조식

08:00~08:15  호텔 체크아웃

08:15~09:10  호텔~동방명주로 이동

09:10~11:25  동방명주 답사

동방명주 매표소이다. 방학기간이라 사람이 붐빌 것으로 예상되어서 빨리 움직였다.

 

 

 

 

 

  매표소에서 바라본 동방명주 타워의 모습이다. 동방명주의 높이는 468M로 세계4위의 방송수신탑이다. 94년부터 운영중에 있으며 00년에 관람용 유리바닥을 설치했다. 세계 3위 방송탑은 러시아, 2위는 캐나다, 1위는 중국 광동성 광주타워라고 한다.

 

 

 

 

 

  동방명주 입장권이다. 생각보다 아주 비싼편이었다. 상해시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가 바로 이곳 동방명주 입장료란다.

 

 

 

 

 

동방명주만의 특별한 엘리베이터다. 3기의 엘리베이터가 있으며 엘리베이터 안내하는 여성분들 키가 175Cm이상이었다.

 

 

 

 

 

동방명주에서 내려다본 상해의 모습이다. 스모그로 뿌옇게 보인다.

 

 

 

 

 

내부의 홀이다.

 

 

 

 

 

외탄지구의 모습이다.

 

 

 

 

 

각종 기념품이다. 크기에 비해서 너무도 비쌌다.

 

 

 

 

 

이렇게 뜯어서 끼우는 종이 타워도 무려 98위엔이다. 컥!

 

 

 

 

 

기념샷! 역광이라서 얼굴이 안보인다. ㅋ~

 

 

 

 

 

홀에서 바깥으로 나가면 그 유명한 투명 유리바닥이 있다.

 

 

 

 

 

아래 상해시의 모습이 보이는가?

 

 

 

 

 

아찔한 높이 259M위에서 기념샷이다. ㅎ

 

 

 

 

 

 

 

어색한 셀프샷!

 

 

 

 

 

 

장난기가 가득~ 존경하고 사랑하는 단장님~!

 

 

 

 

 

기념사진 촬영중이신 단장님~!

 

 

 

 

 

과감하고 색시하게~

 

 

 

 

 

꺽다리 박정현 훈육관님~!

 

 

 

 

이렇게 방학을 맞은 현지 학생들과 인파로 붐비었다.

 

 

 

 

 

동방명주에서 찍은 상해시가지의 모습

 

 

 

 

 

외탄강을 이동중인 다양한 배들~

 

 

 

 

 

유리 관람한 전망대의 높이가 259M란다. ㅎㅎ

 

 

 

 

 

세계 각국의 초고층 타워의 높이를 비교해 놓았다.

 

 

 

 

 

동방명주 지하에는 상해시 역사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선 상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수 있다.

 

 

 

 

 

 

 

상해의 옛모습, 경마장의 모습이다.

 

 

 

 

 

아주 익숙한 거리의 모습이다. 바로 그 유명한 외탄지구의 옛모습이다.

 

 

 

 

 

상해시를 누볐던 옛날 자동차들~

 

 

 

 

 

 

낮익은 지프도 있었다. ㅎ

 

 

 

 

 

30년대에 쓰인 상해의 대중교통 버스

 

 

 

 

 

90년대 차량, 독일 OO사 차량이다.

 

 

 

 

 

해외 열강들의 영사, 대사들의 모습이다.

 

 

 

 

 

인력거꾼

 

 

 

 

 

상해의 거부가 자신의 아들 결혼식을 위해 만든 일종의 의자이다.

 

화려함과 세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상해의 옛 모습이다. 외탄 강에 성을 쌓아서 출입하는 배들을 통제했단다.

 

 

 

 

 

옛날 농부 가정의 부엌 모습이다.

 

 

 

 

 

일할때 칭얼대는 아기는 이렇게 통에 넣어서.......

 

 

 

 

 

인력거를 타는 여인~

 

 

 

 

 

차도 마시고

 

 

 

 

 

대장간에서 필요한 물건도 만들고

 

 

 

 

 

저울에 달아서 물건도 팔고

 

 

 

 

 

술도 팔고~

 

 

 

 

 

한약도 팔고...

 

 

 

 

 

서양상선들

 

 

 

 

 

재판을 받는 모습

 

 

 

 

 

귀뚜라미 싸움~ 중국 남자들이 특히 좋아하는 게임이다.

 

 

 

 

 

아편......

 

 

 

 

 

서양 바에서 술도 한잔~

 

 

 

 

 

서양 군함도 입항

 

 

 

 

 

서양군함과 중국 전통 상선이 묘한 이질감을 준다

 

 

 

 

 

각국 대사관의 건물들이다.

 

 

 

 

 

상해의 유명했던 나이트클럽

 

 

 

 

 

상해 관련 영화에서 자주 나왔던 그곳이라고 한다.

 

 

 

외탄지구의 옛모습이다.

 

 

 

 

 

대사관앞을 지키던 사자상이란다.

 

 

 

 

 

중국 최초의 증권거래소의 모습이다.

 

 

 

 

상해 경마장

 

 

 

 

 

남경로의 번화한 모습

 

 

 

 

 

 

아주 유명했던 단주다원(다방)

 

 

 

 

 

외국인 선교사가 교회에서 중국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

 

 

 

 

 

대사관에서의 사교댄스~

 

 

 

 

아래부턴 상해에 들어왔던 서구 열강들의 건물 모형이다.

각 나라마다 다른 건축양식을 볼 수 있었다.

 

 

 

 

 

 

동방명주와 상해역사 박물관 답사를 마치고 인증샷~!

 

 

 

11:25~12:00  이동

12:00~13:00  중식(무제한 삼겹살)

13:00~14:20  자유시간

14:30~15:00  이동

15:00~15:30  선물센터 쇼핑

15:30~15:35  이동

15:35~16:30  발권 및 짐 보내기

16:30~17:20  공항에서 자유시간

  또다시 항공기가 연착하여 2시간 10분 동안 기다려야 했다. 항공기 편수에 비해 부족한 활주로 때문에 연착하는 경우가 매우 잦은 편이라고 한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비빔밥 전문점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상해에서 먹는 돌솥밥, 반찬은 하나도 없었지만 맛있었다.

 

18:05분 출발 예정이었지만 19:30에 겨우 보딩, 20:07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22:3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상해, 서안여행에서 사온 특산품이다. 대부분 서안 특산품이다. 서안은 대추가 아주 유명하다. 가짜 제품도 많은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아랫쪽에 "S"자 마크가 인증표시라고 한다. 대추의 크기가 어린아이, 여성의 주먹크기와 맞먹는다. 말린 대추와 대추젤리, 그리고 목이버섯이다. 목이버섯을 그냥 찬물에 넣어두면 부풀어 오른다. 고추냉이를 간장에 풀어서 찍어먹으면 좋다.

 

 

  이번 상해+서안 여행은 기존 상품에는 없는 것으로 여행사에 요청하여 특별 코스로 만들어서 다녀오게 되었다. 그만큼 나에겐 뜻깊은 여행이었다. 비행기도 갈아타야했고,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지루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시황과 관련된 병마용과 진시황릉, 화청지 등의 교훈과 추억은 너무도 큰 교훈과 감동을 주었다.

  이번 여행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송인혁 팀장님과 남궁온영 실장님, 중국 현지 상해 조태욱 가이드님께 특별히 감사를 전한다.

Posted by 강철캡틴

  오늘은 서안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의 주요일정은 "명나라 성벽", "비림과 서원문거리", "고부와 회족거리"이다.

07:00~08:00  기상 및 조식, 호텔 체크 아웃

09:00~10:10  라텍스 제품 구경

10:10~10:25  성벽으로 이동

10:25~11:00  성벽 답사

우리가 서안에서 묵었던 "해승호텔"의 전경이다. 규모는 다소 작아도 깔끔해서 좋았다.

 

 

 

이곳을 나와 서안 관광안내소겸 성벽 매표소로 이동했다.

 

 

 

우리가 오늘 보는 곳은 남문일대이다. 우리나라의 수원화성처럼 성벽이 잘 보전되어 있고 성벽안에 구도심이 자리잡고 있다.

 

 

 

성벽에 대한 소개이다. 이 곳은 명나라 주원장의 둘째 아들인 진왕이 건설한 곳으로 현재 중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성벽이며 총 길이는 13Km에 달하며 서안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매표소 안에 들어가봤다. 고작 성벽 둘러보는데 요금이 54위엔이라니!, 만원이 넘는 돈이다.

 

 

 

매표를 하고 남문으로 이동했다. 남문 앞 공터에 넓은 버스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성벽위로 올라가보니 생각보다 굉장히 폭이 넓었다. 서안은 우리나라 경주와 자매결연 도시란다. 해마다 이곳 성벽에서 서안 국제 마라톤 대회를 진행한다고 한다. 성벽위를 달리면서 내려다보는 시가지의 풍경도 색다를 것이다.

 

 

 

성벽위에 올라서 바라본 남문이다.

 

 

 

남문을 배경으로 단독샷!

 

 

 

 

함께 한 54기 후보생들과 함께~!

성벽을 다 돌아보고 나서 비림으로 이동했다.

11:00~11:10   이동

11:10~12:00   비림 및 서원문거리 답사

고성과 비림을 함께 관람하면 입장료가 100위엔이라고 한단다

 

 

 

비림 박물관 안내 요도이다.

비림은 북송 원우2년(1087년)부터 장개석까지 1,000년동안 수집한 역대 비석, 묘지 4,000여점이 보관된 곳으로서 중국의 국가1급 박물관으로서 국가AAAA급 관지정구라고 한다. 중국에서 선정한 외국인이 가봐야 할 50개 지역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명소이다.

 

 

 

비림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비림의 상징 "석대효경"이다.

 

 

 

복도에 들어서면 중요한 비석들의 경우 이렇게 유리로 보존되어 있다.

 

 

 

 

비림, 말 그대로 비석의 숲이다. 여러 글씨체의 비석들이 보관되어 있다.

 

 

 

 

비석 아래에 보면 이렇게 안내표지가 있는데,

 

 

 

박물관용 헤드셋을 착용하면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단다.

 

 

 

 

 

 

 특이하게도 비석외에 비석화도 있다.

태백산 전도에 대한 설명이다.

 

 

 

 

 

현지에서 본 신기한 장면

 

 

 

 

즉석에서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먹을 두드려서 탁본을 떠준다.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떼어내서 한쪽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지금은 유실되고 없는 당나라 왕궁에 대한 비석에 대한 설명이다.

 

 

 

 

방금전 달마 탁본을 뜨시는 분이 다른 비석의 탁본을 뜨고 있었다.

 

 

 

 

 

이렇게 비림의 가장 안쪽에 탁본진품 매대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 눈에는 별 가치가 없을지도 몰라도 중국 사람들과 특히 일본인들, 그리고 서예가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이곳 비림이라고 한다.

 

 

 

 

 

비림을 나와서 향한 곳은 서원문 거리이다. 입구에서 맞이해 주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유교를 세우고 발전시킨 사람들 - 공자, 맹자, 주자이다.

 

 

 

서원문 거리의 모습이다. 문방사우를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인사동과 느낌이 비슷하다.

 

 

 

이렇게 다양한 크기의 붓들을 판매하고 있다.

 

 

 

 

예쁘고 다양한 연적(먹을 갈때 쓰는 물을 담는 용기)들이다.

 

 

 

 

방금 비림에서 봤던 탁본!, 이곳에서 파는 건 진품이 아니라 가품이다.

 

 

 

 

 

이렇게 동양화도 판매한다. 30위엔

 

 

 

 

 

전각용 옥, 나무들이다. 중국인들은 특히 옥을 좋아한단다.

 

 

 

 

 

특이하게도 흙으로 빗어낸 작품이라서 찍어봤다.

 

 

 

 

 

  이제 서원문 거리를 나와서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건물이 서안 시내 한가운데 있다는 "고루"이다. 서안 어디를 가든지 고루를 중심으로 길을 찾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고 한다.

 

 

 

12:00~12:10  이동

중식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본 중국 전통술들이다. 중국 10대 명주 중 하나로 꼽히는 서봉주가 서안의 특산품 중 하나이다.

 

 

 

 

 

 

서안 현지식을 제법 잘하는 호텔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래도 향신료가 적어서 먹을 만 했다.

 

 

 

 

13:00~13:10  이동

13:10~14:30  고부, 회족거리 탐방

이곳이 회족거리의 입구이다. 고부(오래된 저택)는 회족거리 안에 위치하고 있다.

 

 

 

 

 

회족거리 안에는 다향한 물건과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목요일 오후인데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리가 일자로 형성되어 있다는 거다.

 

 

 

 

이곳이 회족거리내에 위치한 고부(고씨장원)이다. 이곳은 명나라 수정14년 집주인 고악송이 12살에 과거시험에서 방안(2등)이 되어 황제로부터 선물로 받은 저택이다. 그래서 방안부라고도 불리운다. 4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고씨장원은 명청시대의 건축풍격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청시대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ㅏ.

 

 

 

 

 

중국 전통의 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고부 안으로 들어가서 중국 전통의 대저택을 돌아보았다.

 

 

 

 

 

아녀자들은 2층에 거하고 있다가 외부에서 신랑감이 오면 이렇게 위에서 구경하곤 했다.

 

 

 

 

 

고부를 둘러보는 후보생들~

 

 

 

 

 

좌 대대장 정성화, 우 강태석 후보생과 함께

 

 

 

 

 

고부를 나와서 본격적으로 회족거리를 탐방했다.

 

 

 

 

 

이렇게 활기차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길거리 음식이 다양하다.

 

 

 

 

 

길게 늘여뜨려 엿을 만들고 있다.

 

 

 

 

 

엄청난 나무젓가락~ 양꼬치를 먹고 남은 꼬치를 버리는 곳이다.

 

 

 

 

 

게튀김! 아주 바삭하니 맛있다.

 

 

 

 

  젊은 이들이 특히 좋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여행기념품을 파는 곳이다. 이곳까지는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쭉 일자로 걸어오면 되기 때문이다. 이곳 부터는 골목이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어서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자신이 없으면 꺽이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북면들이다.

 

 

 

 

 

어라~! 공항 면세점에서 비싸게 주고 산 내 시계도 보인다. ㅋ~~~

 

 

 

 

 

  박 모 수영선수가 끼고 나와서 유명해진 닥터 브레(?) 헤트폰이다. 불루투스되는 것도 있다. 음질도 상상외로 훌륭했다. 오형근 후보생이 구한 것 음질을 들어보니 하나쯤 사올 껄하고 후회했다.

  나는 여기서 냉장고 자석 2개 40위엔과 페라가O벨트를 100위엔 주고 구입했다.

 

 

 

 

 

 

14:30~15:30  이동(회족거리 -> 서안공항)

15:30~16:30  발권 및 짐 보내기, CIQ통과

16:30~17:30  공항내에서 자유시간

  원래 우리가 타야할 비행기가 18:10에 출발했어야 하나, 2시간이 지연되어 19:50에야 가까스로 보딩하게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공항에서 3시간 넘게 허비한 샘이다.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든 생각이 우리나라 공항처럼 편리하고 신속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긴급방송이 중국어로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몰려들길래 가서 보니 이렇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었다. 비행기 표를 보여주고 도시락을 받아서 먹었다. 생각외로 맛이 좋았다.

 

19:50       보딩

20:27       이륙

22:16       상해 착륙

23:15~00:10   호텔로 이동

00:10~00:20   호텔도착, 룸편성 후 취침

Posted by 강철캡틴

   오늘 여행은 중국의 문화 역사 유적지 코스(화청지, 지하궁전, 병마용, 진시황릉)가 주를 이룬다. 중국인들이 꼽는 3명의 지도자가 진시황, 칭기스칸, 모택동인데 진시황의 도시가 바로 서안이다. 서안은 역사적으로 주나라 이후 5,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 우리나라 경주와 자매결연 도시이다.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등 13개 나라의 수도였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의 수도 426년으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한다. 당나라 이후로는 지방도시로 몰락한다.  참고로 낙양은 9개 나라의 도읍지였다. 현재 중국을 지배하는 "한족"의 개념도 한나라 유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장강과 황하 유역사이에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 "한족"으로 부르면서 정립된 개념이다.

   서안(장안)은 서울 면적의 16배 크기이며,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도시로서 중국내 8위다. 인구는 1,400만명이 살고 있다. 현재 중국 국가 주석인 시진핑 부친의 고향이다. 현재 삼성 반도체 공장이 지어지고 있다. 원래 공기는 5년인데 이는 중국의 건축실상을 모르는 삼성측의 실수(한국이라면 당연히 5년내에 완공되지만)로 5년이 연기되어 10년간 공사가 진행중이다. 또한 교육의 도시로서 200여개의 대학교가 있으며 90만명의 재학생과 매년 38만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여기서 졸업한 학생들은 대부분 중국 전역으로 직장을 구해 떠나는 추세이며, 호텔 관광 관련 학과의 학생들이 이곳에 남아 이곳 지역사회의 주류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서안에서 유명한 것은 당현종과 양옥환(귀비), 진시황이다. 특산품으로 석류와 복숭아, 아기 주먹만한 대추와 포도 등이 있으며 특히 석류는 당나라 때 개척한 실크로드(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를 통해 이란 들여온 과일이다.

   양옥환(귀비)의 고향은 충칭(중국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현재 중국에서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는 하얼빈과 충칭, 그리고 성도란다. 양귀비는 1남 4녀중 4째 딸로 태어났는데 10살때 그 아버지가 죽었다. 몰락한 가문의 딸출신으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장안의 삼촌집으로 입양된다. 삼촌은 당나라 황실의 악단장으로서 음악적 조예가 매우 깊었다. 중국 문화에서 응접실과 서재는 가장의 권위를 보여주는데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응접실에서 먼저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상대방에 대해서 파악이 되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면 내부 응접실(서재)로 손님을 모신다. 그래서 서재는 집주인과 조강지처만 평소에 들어갈 수 있는 특별제한구역이다. 10살의 양옥환이 삼촌집에 갔으나 사촌형제들과 잘 어울릴 수가 없었고 왕따를 당하던차 삼촌의 서재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각종 서적, 특히 음악서적에 빠져들게 된다. 기댈 곳 없는 옥환이 음악세계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몰래몰래 다니다가 어느날 일찍 퇴근한 삼촌에게 들키게 되는데, 어린 것이 음악공부하는게 신기하기도 해서 몇가지 물어보던 삼촌은 옥환의 총명함에 놀라고 감동받아서 본격적으로 제자로서 가르치게 된다.

   3년이 지나서 13세때 궁의 악사로 취업(꽌시, 삼촌의 빽그라운드~!)해서 삼촌의 최측근에서 돕다가 16세때 삼촌이 은퇴하면서 악단장에 취임하게 된다. 요즘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리더십과 음악실력이 아주 뛰어났다는 것이다.

   당현종은 아들 20명과 딸 10명을 낳았는데 그 중 하미공주가 결혼식을 하는데 그날 공연을 양옥환에게 부탁한다. 그때 누나를 따라서 놀러온 18번째 아들 수왕이 양옥환을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그래서 삼촌을 찾아가서 결혼을 부탁하게 되고 삼촌의 적극적인 권유에 못이겨 옥환은 첫번째 16세 때 결혼을 하게 된다. 단, 결혼의 조건으로서 궁의 악단장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양옥환이 22세때 당현종을 만나게 된다. 현종은 업무에 미친사람으로서 왕권강화와 국력신장을 위해서 매진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유일한 안식처가 측실 무혜비였는데 개원30년, 당현종 56세때 무혜비가 죽는다. 외로운 마음에 악단의 공연을 보다가 너무도 획기적이고 감동적인 공연에 악단장을 찾게 되고 그때에 당현종이 옥환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 당연히 명절때마다 왕자들이 왕비를 데리고 인사를 했었지만 서열 18위의 왕자를 눈여겨 봤을까? 그러니 며느리를 몰라볼 수 밖에 없었다.  당현종 또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서 옥환과 대화가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고 감탄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눈여겨 본 내시 고력사가 수왕에게 찾아가서 결혼생활 6년동안 아기가 없음을 이유로 양옥환을 친정(삼촌댁)에 돌려보내게끔 작업을 한다.

   양옥환에게 반한 당현종은 대명궁으로 바로 데려온다. 사료에 따르면 지금 자금성의 3배 규모였단다. 바로 부인으로 삼을 수가 없어서 무혜비의 명복을 빌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도교 도사로 출교를 시키고 장생전을 지어 무혜비의 제사를 지내게 한다. 이후 5년 동안 두 사람은 장생전에서 사랑을 나누며 음악을 작곡하고 춤을 추며 실재로 많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중국 최고의 시인이라 추앙 받는 백거이의 처녀작이 "장한가"다. 백거이는 당현종 사후 50년의 사람이다. 장한가에 의하면 양옥환은 3,000명의 후궁들이 받아야할 사랑을 1명이 받았다고 평가했다. 이쯤 되면 양옥환의 외모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되는데 키 160Cm에 65Kg의 몸무게였단다. 당시 당나라는 강력한 국력에 각종 물산이 풍부하고 서민들조차 부유하여 영양상태가 아~주 좋았단다. 당시 사람들의 키가 140~150 사이였던 것을 감안하면 아주 출중한 체격조건이다. 외모는 직접 안봐서 당연히 모르겠으나 양옥환의 초상화는 중국엔 없고 대만 박물관에 있단다. 양옥환의 나이 27세 때 양귀비로 책봉하고 조강지처인 황후를 폐위시킴으로서 실질적인 황후자리에 앉히게 된다.

  평생을 일만하다가 양옥환을 만난 당현종, 당연히 업무에 소홀히 할 수 밖에 없었다. 755년 안록산이 현재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공격을 당하게 되서 도망을 다니게 된다. 756년에 마외역(복숭아 과수원)에서 친위대장의 압박에 못이겨 양귀비에게 죽음을 내리게 되고, 양귀비는 스스로 복숭아 나무에 목을 메어 3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현종 72세때 촉나라 성도까지 도망을 갔었고,  757년에 그의 아들 진왕이 장안성을 탈환하였다. 역사상 당현종과 양귀비는 이야기는 여기서 마감이 되었으나 초짜 시인 백거이에 의해서 뒷 이야기가 만들어지는데 이 뒷부분 때문에 신인 백거이는 초특급 베스트 셀러 작가로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된다.

  장안(서안)으로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현종, 양귀비에 대한 그리움으로 매일을 지내던 어느날 도사가 찾아온다. 그토록 사랑하던 양귀비(혼)를 불러주겠단다. 너무도 기쁜 당현종. 그런데 아무리 술법을 써도 소환되지 않는 양귀비, 점을 쳐보니 죽은뒤 저승길로 간 것이 아니라 승천하여 선녀가 되었다. 귀신이라면 소환되는데 선녀라서 소환이 안된다고 한다. 방법이 없냐고 현종이 묻자 도사는 스스로 유체이탈하여 봉래도(중국인들에겐 천당과 같은 곳)에 가서 스스로 찾아오게 끔 설득해야 한단다. 간곡히 부탁하는 현종, 도사는 유체이탈하여 영혼으로 봉래도의 봉래궁으로 찾아가 양옥환을 만났다. 그런데 전생의 기억이 다 지워지고 하나도 기억을 못하는 것이었다. 거의 포기하던 찰나 "이윤기"라는 이름을 대자 기적적으로 기억이 살아난 양옥환, 이에 약속을 잡는데 귀신도 아닌 선녀라서 함부로 지상세계로 내려올 수 가 없었다.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하여  7월 7일 칠석날로 약속을 잡고 술법을 부려 까지로 다리를 내어 두 사람은 만나게 되었다. 이때 이야기 속의 당현종이 지은 시(사실은 백거이가 지은 것)가 당시 여인네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그 내용은 아래에서 다시 소개한다.

 

09:30   호텔 출발

          

11:00~12:10   화청지 관람

  버스 전용주차장에서 내려서 약 5분을 걸어가면 화청지(궁) 입구가 나온다. 입구 맞은편 당현종과 양귀비의 분수대에서 인증샷!

 

 

 

 분수대 맞은 편에 화청궁 액자가 보인다.

 

 

 

 엄청 비싼 입장료다! 1인당 22,000원이다.

 

 

 

   화청지에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건물, 딱봐도 궁전처럼 복원되어 있다. 장생전이다. 둘이 사랑을 나누며 음악을 작곡했던 곳이다.

 

 

 

장생전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 컷!

 

 

 

   양귀비의 목욕탕으로 가는 길에 수중 무대가 보였다. 밤이 되면 이 곳 전체가 거대한 세트장이 되어서 움직이고 레이져와 물안개등의 특수효과와 더불어 배우들의 공연이 시작된다고 한다. 북경의 금면왕조처럼 이곳의 총감독도 장예모 감독이란다. 작품명은 "장한가"

 

 

 

 백거이를 일약 대문호로 만들어준 그의 작품 "장한가"이다. 시멘트를 죽전 모양으로  작품처럼 구성해 놓았다.

 

   한황중색사경국  한 황제 사랑 그리워함에 나라는 기울어가네

   어우다년구불득  오랜 세월 세상을 살펴도 구할 수 없구려

   양가유녀초장성  양씨 가문에 갓 장성한 딸이 있었으나

   양재심규인미식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니 누구도 알지 못하나

   천생려질난자기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일조선재군왕측  하루아침 뽑혀 군왕 곁에 있도다.

   회모일소백미생  눈웃음 한 번에 모든 애교가 나오니

   륙궁분대무안색  육궁에 단장한 미녀들의 안색을 가렸다오

   춘한사욕화청지  봄 추위에 화청지에서 목욕함을 허락하여

   온천수골세응지  매끄러운 온천물에 기름진 때를 씻으니

   시아부기교무력  시녀들 부축하여 일어나니 아름다움에 당할 힘이 없도다

   시시신승은택시  그 때부터 황제 사랑 받기 시작하였네

   운빈화안김보요  구름같은 귀밑머리, 꽃 같은 얼굴, 흔들거리는 금장식

   부용장난도춘소  부용휘장 안은 따뜻하여 봄 깊은 밤을 헤아리니

   춘소고단일고기  짧은 밤을 한탄하며 해 높아서 일어나니

   종차군왕불조조  이를 좇는 군왕은 이른 조회를 보지 않았고

   승환시연무한가  총애로 연회에 매이니 한가할 틈 없어

   춘종춘유야전야  봄을 좇는 춘정을 즐겨 온밤을 지새우니

   후궁가려삼천인  빼어난 후궁에 미녀 삼천 있었지만

   삼천총애재일신  삼천의 총애가 그녀에 있으니

   김옥장성교시야  금 같은 방 단장하고 교태로 밤 시중들어

   옥누연파취화춘  옥루 잔치 끝나면 춘정을 이루니

   자매제형개렬사  자매와 형제 모두가 열사라.

   가련광채생문호  예쁘게 여기 가문에 광채가 나니

   수령천하부모심  이로 하여금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불중생남중생녀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도다.

   려궁고처입청운  화청궁 높이 솟아 구름속에 들어 있고

   선낙풍표처처문  신선의 풍악은 바람 타고 어디서나 들려오네

   완가만무응사죽  느린 노래 오만한 춤이 비단결과 피리에 맺히니

   진일군왕간불족  군왕은 종일 넋 잃고 보아도 부족하도다.

   어양고고동지내  돌연 어양 쪽 땅을 울리는 악관의 북소리 들려오니

   경파예상우의곡  예상우의곡에 깜짝 놀라도다.

   구중성궐연진생  구중궁궐에 연기 먼지 솟아오르고

西   천승만기서남항  수천수만 관군들은 서남으로 가고

   취화요요항부지  천자의 기 흔들리며 가다가 서곤 하며

西   서출도문백여리  도성문 서쪽 백여리 마외역에는 

   륙군불발무나하  육군을 보내지 못해 어찌 할 수 없어

   완전아미마전사  미인의 긴 눈썹이 구부러지며 굴러 군마 앞에 죽었네

   화전위지무인수  땅에 떨 군 꽃비녀 거두는 사람 없고

   취교김작옥소두  취교, 금작, 옥소두 땅에 흩어졌네

   군왕엄면구불득  군왕은 얼굴 가린 채 구하지 못하고

   회간혈누상화류  차마 돌린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르네

   황애산만풍소삭  누런 흙먼지 일고 바람 쓸쓸히 부는데

   운잔영우등검각  구름 걸린 굽은 잔도 검각산을 오르네

   아미산하소인항  아미산 아래에는 오가는 이도 드물어

   정기무광일색박  천자 깃발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하네

   촉강수벽촉산청  촉강 맑게 흐르고 촉산은 푸르건만

   성주조조모모정  황제는 아침저녁 양귀비 생각에 잠겨

   항궁견월상심색  행궁에서 보는 달에 마음 절로 상하고

   야우문령장단성  밤비에 들리는 방울소리는 애간장 끊어지는 소리요

   천선지전회룡어  천하 정세 변하여 황제 돌아오는 길에

   도차주저불능거  마외역에 이르러는 걸음 뗄 수 없었네

   마외파하니토중  말 높은 고래아래 진흙더미 속에는

   불견옥안공사처  고운 얼굴 어디 가고 죽은 자리만 남아

   군신상고진첨의  임금 신하 서로 보며 눈물 옷깃 적시네

   동망도문신마귀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겨 가니

   귀내지원개의구  돌아와 본 황궁의 정원은 변함 없어

   태액부용미앙류  태액지의 부용도 미양궁의 버들도

   부용여면류여미  부용은 양귀비 얼굴 버들은 눈썹

   대차여하불누수  이들을 대하고 어찌 아니 눈물 드리우리

   춘풍도리화개일  봄바람에 복숭아며 살구꽃이 만발하고

   추우오동섭낙시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져도

西   서궁남내다추초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우거지고

滿   낙섭만계홍불소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지 않으니

   리원자제백발신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성성하고

   초방아감청아노  양귀비 시중들던 시녀들도 늙었네

殿   석전형비사초연  반딧불 나는 저녁 궁궐 더욱 처량하여

   고등도진미성면  등불 심지 다 타도록 외로이 잠 못 드니

   지지종고초장야  더딘 종과 북소리에 밤이 길다는 것을 알았네

   경경성하욕서천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은 다가오고

   원앙와냉상화중  원앙같이 금슬좋은 기와는 차고 서리꽃이 심해지나

   비취금한수여공  함께 덮을 이 없는 싸늘한 비취금침

   유유생사별경년  생사를 달리한 지 아득하니 몇 년인가

   혼백불증내입몽  꿈속에 혼백마저 만나볼 수 없네

   림공도사홍도객  임공의 도인이 도성에서 머무는데

   능이정성치혼백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하니

   위감군왕전전사  양귀비 그려 잠 못 드는 군왕을 위해

   수교방사은근멱  방사시켜 양귀비 혼백 찾게 하였네

   배공어기분여전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내달아

   승천입지구지편  하늘 끝에서 땅 속까지 두루 찾아

   상궁벽낙하황천  위로는 벽락 아래로는 황천까지

   량처망망개불견  두 곳 모두 망망할 뿐 찾을 길이 없는데

   홀문해상유선산   홀연 들리는 소문 "바다 위에 선산 있어

   산재허무표묘간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누각령롱오운기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 구름이 일어

   기중작약다선자  그 곳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사는데,

   중유일인자옥진  그 중 옥진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으니

   설부화모삼차시  눈같은 피부와 고운 얼굴 그인 것 같다"하네

西   김궐서상고옥경  황금 대궐 서쪽 방의 옥문을 두드리고

   전교소옥보쌍성  소옥시켜 쌍성에게 알리도록 말 전하니

使   문도한가천자사  한황제의 사자가 왔다는 말 전해 듣고

   구화장리몽혼경  꿈에 깨어 놀라는 화려한 장막 안의 혼백

   람의추침기배회  옷을 들고 베개 밀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주박은병이리개  길게 이어진 구슬발과 은병풍 열리니

   운계반편신수각  구름 같은 머리 한쪽으로 드리우고 막 잠에 깬 듯 

   화관불정하당내  머리장식 안 고친 채 당에서 내려오네.

   풍취선몌표표거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유사예상우의무  예상우의무를 추던 그 모습인 듯

   옥용적막누난간  옥 같은 얼굴 수심 젖어 눈물이 난간에 흐르니

   리화일지춘대우  활짝 핀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은 듯 하구나

   함정응제사군왕  정어린 눈길 돌려 군왕에게 사뢰니

   일별음용량묘망  "헤어진 뒤 옥음, 용안 듣고 뵙지 못하여

殿   소양전리은애절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봉래궁중일월장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회두하망인환처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세상 보아도

   불견장안견진무  장안은 보이지 않고 짙은 안개와 먼지 뿐

   유장구물표심정  장차오래 지닐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전합김채기장거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가지고 가라하네

   채류일고합일선  비녀는 반 쪽씩 상자는 한 쪽씩

   채벽황김합분전  황금 비녀 토막내고 자개 상자 나눴으니

   단교심사김전견  두 마음 이처럼 굳고 변치 않는다면

   천상인간회상견  천상에든 세상에든 다시 보게 되리라네

   림별은근중기사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사중유서량심지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殿   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 장생전에

   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재지원위련리지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천장지구유시진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綿綿   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비익조는 중국의 전설상의 새로서 눈도 하나 날개도 하나 발도 하나인 암수 한쌍의 새다. 하늘을 날려면 같은 곳을 바라보고 동시에 날갯짓을 해야하므로 떨어져선 절대로 살 수 없는 사랑하는 연인을 뜻한다. 연리지는 상식이니 설명 생략. 학창시절 유덕화가 주연했던 "천장지구" 영화가 생각난다. "천장지구" 영원한 사랑을 뜻하는 이 문구의 출처가 바로 "장한가"였던 것이다.

 

 

 

 

 장한가 바로 앞에 있는 감나무이다.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접붙한 흔적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렇게 감이 맺혀있고 오직 이곳 화청지에만 있는 귀중한 나무라고 한다.

 

 

 

 뒤에 보이는 나무가 석류나무다. 석류나무 자체가 큰 나무가 아니라고 한다. 이곳에선 이 나무의 나이를 400년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곳이 양귀비가 목욕한 해당탕이다.

 

 

 

 해당화를 닮아서 해당탕이다. 이곳에서 먼저 양귀비가 목욕을 한 뒤 당현종 전용 탕으로 이동했다 한다.

 

 

 

 이곳이 당현종 전용탕인 연화탕이다. 이곳에서 당현종이 목욕을 하고 있으면 양귀비가 넘어왔다고 한다.

 

 

 

 행운을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 넣었다.

 

 

 

 이곳 성신탕은 "정관의 치"로 권력을 잡은 당황제 이세민의 전용탕이었단다.

 

 

 

 원래는 노천탕이었단다.

 

 

 

 

이곳은 향신탕이다. 일종의 대중탕으로서 주로 시녀나 하인들이 사용했다.

 

 

 

 향신탕의 내부 모습이다.

 

 

  왜 온천인데 물이 없을까? 원래 이곳은 사료속에만 존재했었다. 온천관광지를 개발하던 와중에 유적지가 발견되어서 오늘날의 관광지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온천물은 흘렀지만 지금 이곳엔 약수터 정도의 규모만 재현하고 나머지 물줄기는 화청지 바로 옆 온천호텔에서 다 끌어다 쓴다고 한다.

 

 

   양귀비 상이다. 대리석이나 석고가 아니라 백옥상이라고 한다. 양귀비의 자태와 어울리지 않게 문명인답게 행동하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지난 5월 이전엔 이 빨간 금줄이 없었다. 5월 노동절때 관광객들로 붐볐는데, 그때 남자들이 양귀비의 오른쪽 가슴을 잡고 사진을 찍어대는 바람에 오른쪽 부분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5월부터 금줄이 설치됐단다. 어딜가나 남자들이 문제다. 어쨌거나 인증샷!

 

 

 

 매표에서 적혀있는 티켓의 가격이 심상치 않다. 이것은 바로 "장한가" 공연 티켓 안내이다.

 

 

 

 이 드넓은 공간이 변신, 건물들의 위아래 높낮이가 생기면서 입체감 있는 극장이 된다하니 기회가 된다면 꼭 보고싶은 "장한가"공연이다.

 

 

  화청지를 돌아보고 느낌 소감 :  "경국지색"으로 알려진 양옥환(귀비) 본인은 잘못한 것이 없다. 다만 사랑의 대상이 당현종이었다는 것이 비운의 주인공으로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점심식사하러 이동 중에 버스의 차창으로 관람한 곳이다. 당현종과 양귀비가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의 조형물이 분수대와 함게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화청지 근처에 있는 광장이다. 서안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 중에 한 곳으로 아침엔 운동하러, 저녁엔 데이트하러 많이 오는 곳이란다.

 

 

 

12:30~11:50   중식

 마찬가지 중국 현지식이다. 고등어 구이가 생각외로 맛있었다. 유채기름에 볶은 야채 요리들도 먹을 만 했다.

 

 

 

 

 13:55~14:10   지하궁전 관람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자마자 대역사를 일으킨다. 도로망 정비, 화폐통일, 만리장성 축조, 진시황릉 건설 등 총 200만명의 인력이 동원되었다. 당시 중국 전체 인구가 2,000만명이었으니 국민 1/10을 공사에 동원한 샘이다. 200만명 중에 진시황릉 건설에 동원된 인력은 72만명이다. 진시황 등극 직후(39세)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진시황 사후(50세 사망) 1년까지 공사를 진행했다.

입장료는 성수기 40위엔(8,000원)이다.

 

 

 

   이 지하궁전은 실재 진시황릉 지하에 있는 무덤을 모형으로 재현한 것이다. 진시황릉은 현재의 과학기술로도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한다.

 

 

 

 지하궁전 지하입구에서 본 진시황릉의 지하 묘실(관)이다.

 

 

 

   1층으로 올라가면 동서남북 4면으로 진시황의 각종 행사가 재현되어 있다. 진시황 등기(극), 6국 궁전(천하 재후들의 조공), 6국 강호(각국 미녀들), 천하순시 등 4가지 장면이다.

 

 

 

 지하궁전 1층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진시황의 묘실이 보인다.

 

 

 

 중국을 통일한 뒤 현장순시를 나가는 진시황이다. 복을 비는 중국인들이 돈을 던져 놓았다.

 

 

 

 진시황릉 개발이 불가능한 이유는 바로 이 것이다. 중국 전토 가운데 묘실이 있으며 황하와 양쯔강이 실재와 똑같이 구현해놓았는데, 그 주재료가 바로 "수은"이다. 엄청난 양의 수은(100T이상으로 추정)이 매장되어 있어서 중독될 수 있기에 사실상 중국 정부도 포기한 샘이다.

 

 

 

 지하궁전 2층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저 좁은 관람로를 가득 채운 중국사람들, 여기도 방학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어딜가나 사람들로 넘쳤다.

 

 

 

 

 

 

 14:30~17:30   병마용 및 진시황릉 관람

                    진흙사람을 무덤에 같이 묻는 관습은 고대 사회시절 순장이 인권신장으로 말미암아 개선된 형태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길 진시황제 이후 그런 관습은 없겠거니 하지만 한나라 경제 때에도 무덤에 흙사람을 같이 묻었다. 병마용의 병사들의 키는 180~190Cm인데 당시 인간으로서 가장 큰 키라고 한다. 우리 국군의 의장대와 같은 병사들이다.

   이곳은 1974년 밀밭에 우물을 파려던 양씨촌 사람 양씨 등 3명이 작업 중에 인형의 머리통을 발견함으로서 그 존재가 알려졌는데 정작 중국의 정식사료에는 전혀 기록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있는 지도 몰랐을 뿐더러 사서에도 기록되지 못했던 곳이 발굴되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병마용은 세계8대 불가사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호갱이 처음으로 발굴을 시작한 곳으로 6,000명의 인형이 들어있다. 현재 1,000명이 복원되어 서서 정렬되어 있으며 나머지 5,000명은 여전히 복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인형들의 손을 보면 다 무구를 쥐고 있는 모양인데 정작 무구는 없다.  2호갱은 마차와 기마병, 활기병, 석공병이 동쪽을 바라보고 배치되어 있다.  3호갱은 68명이 유일한데,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작전회의실, 지휘통제실로 추정된다. 1,2,3호갱 모두 진나라 당시 전쟁수행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병마용은 진시황릉의 동쪽 1.5Km 지점에 있으며, 진시황 사후 그를 지키는 군대를 동쪽에 배치한 것이다.

 여기도 가족단위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왠지 고급져 보이는 입장권이다. 가격은 220위엔이다. (44,000원) 정말 비싸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입장~!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복원된 인형이 3개인데 그 중에 하나인 석궁수이다. 얼굴과 갑옷의 칼라까지 채색되어 있다. 원래 발굴된 모든 인형들이 색칠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기중에 노출된 순간 산화되어 색깔이 다 날라갔다. 다행이 이 석궁수는 채색이 다 날라가기직전에 진공처리되서 색을 살릴 수 있고 실재로 전시되어 있는 작품이다. 꿇어앉은 오른쪽 발의 뒷면에는 당시 신발의 밑창까지 재현되어 있어서 놀라움을 감출 수 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진나라의 계급은 신발의 앞굽이 높이로 구분이 된다. 앞창이 낮을 수록 신분이 낮은 것을 의미한다.

 

 

 

 이곳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1관이다.

 

 

 

   1관의 오른쪽에 위치한 2관이다. 3관은 2관의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들의 위치가 뒤죽박죽인 까딹은 병마용 발견 뒤에 건물을 올렸기 때문이다.

 

 

 

 여긴 병마용과 진시황릉 발굴 및 개발관련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시간이 없다면 안봐도 그만인 수준이다.

 

 

 

 박물관 내부에 들어가면 이렇게 발굴당시의 역사기록이 잘 설명되어 있다.

 

 

 

 인형들이 발굴된 장소와 인형들의 다양한 표정과 수염, 머리형태와 복식

 

 

 

 최초 발견된 1관의 위용!

 

 

 

 박물관에서 가장 공을 들인 전차를 발굴하는 모습이다.

 

 

 

 맑은 장신구까지 정확하게 재현되어 있다. 말은 오늘날 기준으로 몽고말이다. 체구는 작으나 지구력은 좋은 전마이다.

 

 

 

 79년 당시 건물을 세워 완공한뒤 관람객들이 입장하는 모습

 

 

 

 실재로 발굴 작업하는 장면이다.

 

 

 

 이렇게 발굴이 되면 제대로 형체를 갖춘 것 보단 다 부셔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번호표를 부여하여 하나씩 복원해 나간다.

 

 

 

 야간 작업하는 모습이다. 각 실마다 흑벽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흑벽위에 나무로 천장을 구성하여 보존되고 있었다.

 

 

 

 전차를 완벽하게 복원한 모습이다.

 

 

 

 박물관 내에 유리관으로 전시된 인형의 모습이다. 줄자와 각종 작업도구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가장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보니 이렇게 전차가 있었다.

 

 

 

 실재로 보면 엄청나게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전차가 최초로 발견되었을 당시의 기록 사진이다. 보다시피 전차는 산산조각나 있다.

 

 

 

  이건 함께 복원된 거푸집이다. 실재로 병마용의 병사들의 손은 전부다 무구를 쥐고 있는 형태이다. 기록과 전승에 따르면 초패왕 항우가 이곳을 습격하여 파괴하고 무구는 다 회수해서 썼다고 한다.

 

 

 

 함께 발굴된 각종 토기와 장식들

 

 

 

 당시 청동기 무기들이다.

 

 

 

 이건 창과 극이다.

 

 

 

 박물관을 다 돌아보고 나서 2관으로 향했다.

 

 

 

 2관의 규모 또한 굉장히 컸다.

 

 

 

 이렇게 번호표를 붙이고 자신의 나머지 부분과 결합되기를 바라는 수많은 인형들이 바로 보인다.

 

 

 

 아직 작업 개시 조차 못한 인형들이 산만하게 누워있다.

 

 

 가장 완벽한 형태로 발굴된 석궁수인형이다. 바로 여기에서 발굴되었단다.

 

 

 

 이건 입궁수, 서서 활을 쏘는 병사다. 역시 계급이 아주 낮다.

 

 

 

 이건 마병이다.

 

 

 

 이건 장군이다. 가장 유명한 인형 3인방 중 하나. 원래 두손아래 청동검이 있었다. 신발의 앞굽이를 보면 앞으로 휘어서 올라가 있다. 계급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건 중급 군사다. 문관 또는 행정일을 했던 사무관으로 보인다.

 

 

 

 이건 최초 발견되었을때 인형의 갑옷이 채색되어 있던 상태의 기록 사진!

 

 

 

 가장 유명한 석궁수 인형이다.

 

 

 

 뒷 모습을 보면 신발의 밑창과 채색된 갑옷까지 다 관찰 할 수 있다.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2관에서 3관으로 가는 길에 있는 유료사진(입체사진) 찍는 곳이다. 사진만 찍어도 돈을 내야함은 물론 직접 인화해주는 가격은 한국돈 2만원이다. 2관 관람을 마치고 3관으로 향했다. 3관은 2관의 뒷편에 있다.

 

 

 

 3관 입구이다.

 

 

 

 3관은 2관보다 그 규모가 작다.

 

 

 

 대신 제병과가 다 구성되어 있고

 

 

 

 이렇게 작전회의실도 구성되어 있다.

 

 

 

 인형의 목부분에 구멍이 뚤려 있는 이유는 다리 따로 몸통따로 목따로 제작해서 결합하는 방식을 썼기 때문이다. 3관 관람을 마치고 대망의 1관으로 향했다. 1관은 3관 뒷문으로 나오자 마자 퇴장로로 역방향으로 들어갔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1관!

 

 

 

 수 없이 많은 군사와 전마들

 

 

 

 자세히 보면 전방의 3열은 갑옷이 없다. 바로 포로로 잡은 적국의 병사들이며 이들을 전투시에 화살받이로 썼다. 잔인하여 적에게 공포심을 주면서 아군의 병력을 보호하고 적군의 사기를 꺽어버리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본 전투대형을 역사적 사실 그대로 여과없이 볼 수 있다.

 

 

 

   1관의 현관부분에서 찍은 인증샷! 내 인생 살면서 꼭 와보고 싶었던 세계8대 불가사리의 감동이 밀려온다. 그런데...살찐 저 똥배와 나잇살이 부끄럽다. T T...

 

 

 

 1관 전체의 모습이다. 그 규모의 웅장함과 더불어, 예술적 가치까지 더해 묘한 흥분을 불러 일으킨다.

 

 

 

 

 전면 3열의 포로들과 마찬가지 측면도 1열로 포로들을 배치해서 적의 기습공격으로 부터 대비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인파!!!

 병마용 1관 출입구의 모습이다. 역시 사전에 계획한데로 역순으로 관람해 보길 정말 잘했다.

 

 

 

병마용 관람을 다 마친뒤 박물관을 배경으로 단체샷~!

 

 

 가이드의 인솔하에 이젠 진시황릉으로 걸어서 15분 정도 이동한다. 가는 길 곳곳에 상점과 음식점들이 있다.

 

 

 

 드디어 도착한 진시황릉이다.

 

 

 

 진시황릉의 구성도면이다. 그 웅장한 규모를 바로 알 수 있다.

 

 

 

 

 바로 뒤에 보이는 산이 바로 진시황릉이다. 원래 사료에 따르면 높이가 120M였으나 초패왕에 의해 도굴을 당하고 나무 천장을 제거하여 주저않아 버린 이유 등으로 현재는 75M로 낮아졌다.

 

 

 

19:00~20:40   석식

  땀과 먼지에 쪄든 몸을 씻은 뒤 우리가 묵는 해승호텔 자체 식당에서 중국 현지식을 먹었다. 이곳도 한국인 관광객을 고려하여 김치가 나왔다. 식사 후 맥주를 마시며 피로를 풀었다.

 

 

3일차 여행기 끝~!

Posted by 강철캡틴

07:00~08:20   기상, 호텔에서 조식

08:20~08:30   룸체크

08:30~09:00   이동

09:00~10:00   홍커우 공원 

  예전엔 이곳이 홍커우 공원이었지만 지금은 로신공원으로 바뀌었다. 로신은 중국인 의사로서 일본유학 출신으로 일본 식민지배에 잠들어 있는 중국인들의 의식 개혁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원래 이곳은 아무것도 없었고 일본군대가 쓰던 연병장이었다.

 

 

 

 

  홍커우 공원 입구에 조성된 멋진 돌 작품. 중국인들은 이렇게 돌작품을 굉장히 좋아한다. 왜냐하면 상해 역시 평지고 산이 거의 없다. 이런 큰 돌작품의 경우 산을 상징하기도 하고 고관이나 대부호의 경우 자기 과시를 위해서 자기 집이나 정원에 이렇게 돌 작품을 구성한다.

 

 

 

 

 홍커우 공원의 전체 구성도이다. 좌하단에 경기장이 보이는데 이곳의 명칭은 홍구운동장 그대로 남아있다. 결국 홍구공원 명칭 또한 중국인 로신에게 빼앗긴 셈이다. 어쩔 수 없다. 윤봉길 의사는 한국사람, 로신은 중국사람이니까...

 

 

 

 우리의 목적지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다. 많은 외국인이 찾는 곳이라서 안내도나 화장실이 잘 구비되어 있고, 공원 입구 경비실 바로 옆에는 뜨거운 물도 받아서 차를 우려내어 마실 수 있게 되어있다. 이곳은 중-일 관계가 악화되기 전에는 일본사람들도 많이 왔었다고 한다. 그 목적이 윤의사님 보다는 로신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본 풍경이다. 중국인들의 태극권 사랑은 여전하다.

 

 

 

   바로 옆에는 베드민턴을 열심히 하고 있다.

 

 

 

 또 바로 옆에는 이렇게 악기 연주하며 노래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홍구공원에서 기념관으로 가는 길목에 이렇게 매표소가 있다. 1인당 한국돈 3천원!

 

 

 윤봉길 의사 거사 현장 기념비가 서 있다.

 

 

 

 

 윤의사 기념관이다.  안쪽에 윤의사님 흉상이 보인다.

 

 

 현지 전문 가이드가 출동~! 윤의사님에 대해서 열심히 브리핑 해준다.

 

 

 

 

 열심히 설명을 듣는 후보생들~

 

 

 

 

 중국어와 한글로 설명되어 있다.

 

 

 

 원래 윤의사님은 일본식 교육을 받다가 민족혼 말살 정책임을 인식, 퇴교하시고 전통 한학교육을 받으셨다.

 

 

 

 농촌에서 계몽운동을 펼치신 사실...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일본 경찰에서 끌려가 조사를 받고 난 뒤 독립운동을 결심하시게 된다.

 

 

 

 일제의 중국 대륙 침략...

 

 

 

 조국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각오를 하시고 집을 떠난 윤의사님...

 

 

 

 윤의사님의 따뜻한 가족 사랑이 느껴지는 편지들...

 

 

 

 민족차별에 독립운동의사를 밝히신 동생에게 보내신 편지

 

 

 

   야채 장수를 하시며 일본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시다가 김구 선생님과 운명적 만남을 하게 되신다. 거사에 사용한 폭탄과 권총, 결의문 등...

 

 

 

   거사 당일 김구 선생과 아침식사를 하며 시계를 바꾼 일화

 

 

 

 당시 일본군 열병식 행사 장면

 

 

 

 윤의사의 의거 현장 상황도

 

 

 

 폭탄 투척 후 사망 및 중상을 당한 일본군 핵심 요인들과 이 사건을 보도한 신문 기사

 

 

 

 

윤의사님 기념관 앞에서 인증샷!

 

 

 

 

 기념관 내부에들어가면 1층엔 윤의사님 흉상과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홍커우 사건으로 인해 상해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로부터 큰 평가를 받게 되고 관계가 개선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구선생님의 시계, 오른쪽 말뚝은 윤의사님이 사형될 때 사용되었던 것이다.

 

 

 

 윤의사님 사형(총살)장면....

 

 

 

 일본에서 되찾아온 윤의사님 유해

 

 

 

 윤의사님 사건으로 촉발된 독립운동과 조국 광복

 

 

 

 윤봉길의사 추모 사업에 대한 소개

 

 

 

 이 분이 윤봉길 의사의 스승님이다.

 

 

 

   윤봉길 의사의 영정... 뜨거운 애국혼이 느껴졌다. 2층으로 올라가면 소극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윤의사님에 대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뜨거운 감동과 애국심이 저절로 화이팅을 부른다!

 

 

 윤의사님 기념관 바로 좌측에는 이렇게 멋진 공원의 풍경이 보인다.

 

 

 

 공원을 들어서 나오는데 중국 노인분이 한글로 멋지게 붓글씨를 선보이신다.

 

 

 대화를 해보니 한국말을 할 줄 모르신다. 그런데 붓글씨는 한글이다.

 

 

 

10:25~11:00  상해 도시계획관 관람

 이곳은 상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20명이상 성인 단체요금 24위엔이다.

 

 

 

 

 1층 로비엔 현재 상해 외탄지구가 디오라마로 구성되어 있다.

 

 

 

 상해의 1930년대 과거 모습이다.

 

 

 

 직접 걸어봤던 외탄의 거리와 주요 건물들의 모습이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그대로 오버랩된다.

 

 

 

 과거 상해는 강의 하류 삼각지 지역으로 작은 어촌 마을이었는데 흙이 쌓이면서 도시로 발전되었다는 설명이다.

 

 

 

 이 모형은 직접 가봤던 예원(옛거리)의 과거 모습이다.

 

 

 

 상해 임시정부 모습이다. 지금 상해 임시정부는 보강 공사중이란다.

 

 

 

 상해 옛거리, 예원이다.

 

 

 

 현재 상해 시가지의 모습이다. 한눈에 황포강을 중심으로 구성된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

 

 

 

 첫 셀카 인증샷!

 

 

 

 윗층으로 올라가니 야간 상황으로 전환되어 조명이 다르게 들어온다. 마치 하늘에서 바라본 상해의 야경이다.

 

 

11:00~12:40   중식(샤브샤브)

 도시계획관 관람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

 

 

 

   중국에서 꽤나 유명한 샤브샤브 전문식당으로 체인점이란다.

 

 

 

 이렇게 닭고기 육수에 갖은 채소와 완자가 기본 셋팅이다.

 

 

 

  여기에 소고기가 나오면 식사 구성 끝~! 빨간색 육수는 중국 특유의 향신이 많이 가미되었다. 흰색 육수는 한국인 입맛에 꼭 맞다. 이곳에서도 정말 원없이 폭풍 흡입을 했다.

 

 

 

 

 마을이 밭전자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서 방향만 기억하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각종 카페와 작은 기념품들을 파는 곳으로 젊은 연인들의 대표적인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14:30~15:20   상해 푸동공항으로 이동

15:20~16:30   발권, 짐붙이기, CIQ통과

                   얼마전 기내 화재 사건이후로 짐가방 및 휴대가방 검사가 대폭 강화되었다. 특히 보조배터리의 경우 엄격하게 검사한다.

16:30~19:00   항공기 지연 이륙으로 공항 대기, 원래는 18:05분 이륙해야 하는데 한시간이 지나서 이륙했다.

  

  중국 국내선, 국제선 이용시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비행기 출발 시간 자체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으며, 게이트가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게이트 근처에서 머물면서 방송을 청취하고 변경되는 사항에 대해서 항상 체크해야 한다. 다행이 이번 서안행 비행기 시간만 지연되었을 뿐 게이트가 변경되진 않았다.

 

 

20:50분   서안공항 착륙

20:50~22:20   짐가방 찾기, 정말 중국 공항의 시스템은 인내력을 시험하기에 충분하였다.

22:20~23:00   이동, 호텔 도착 

 서안 해승호텔이다. 4성급 호텔이라서 상해의 광동호텔보단 공간이 좁다.

 

 

 

그래도 시설은 깨끗했다.

  해승호텔이 서안의 신시가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에 아무런 상점이나 마트가 없었다. 택시를 타고 한인타운(뤼띠)로 가서 청도맥주를 사왔다. 택시 요금은 할증이 붙어서 편도 120위엔(한국돈 2,400원) 정도 나왔다. 감자칩을 안주삼아 여행일정을 간단히 정리한뒤 잠자리에 들었다.

 

 

2일차 여행기 끝~!

 

 

Posted by 강철캡틴

  상해는 어찌어찌 하다보니 벌써 3번째 여행이다. 그런데 이번엔 가방과 감기 때문에 아주 식겁하게 되었다. 우리는 08:55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01:30분에 여수에서 출발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발권을 받기 위해 내 짐가방을 여는 순간...가방이 안열렸다. 가방의 자크손잡이용 자물쇠가 고장이 난 것이다. 아무리 해도 열리지 않아서 완전 당황했다. 번호키라서 0을 기준으로 앞뒤로 9번과 1번을 오가며 열어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급히 서비스 데스크에 물어보니 인천공항 지하 찜질방 프론트에서 열어준단다. 하여 급히 내려가 보니 충격에 의해서 아예 고장이 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여행 출발하기도 전에 생돈 2만원이 허비되었다. 그리고 강제로 열었기 때문에 이 자물쇠는 두번다시 쓸수 없단다. 다시 잠그면 아예 열리지 않기 때문에 가방 통채로 잘라야 내용물을 꺼낼 수가 있단다. T T....

  가방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을까? 갑자기 기침이 막 나는데, 아찔했다. 기침이 멈추질 않았다. 급히 바람막이 잠바를 꺼내입고 몸을 따뜻하게 했다. 다행이 열이나 콧물 가래는 나오질 않았다. 난 인솔자이니까 정신차리고 급히 발권하고 우리 일행들의 짐가방 전부를 무사히 보낸 뒤 급히 인천공항내 약국으로 달려갔다. 기침약 2종(10알짜리)을 샀는데 1만원! ㅎㅎㅎ

  출입국 심사대를 지나가야 하는데, 자동 출입국 심사대가 보였다. 한번만 등록하면 줄서서 기다릴 필요없이 그냥 여권을 찍고 지하철 통과하듯 PASS!!! 하면 된단다. 앞으로도 인솔자 역할을 해야하니 가장 먼저 움직여야 해서 등록하기로 하고 줄을 섰다. 안면부(정면, 측면)을 다시 등록을 하고 지문인가 서명인가 등록하니 작업 완료! 그런데 보딩 시간이 20분도 남질 않았다. 급히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한 뒤 열차에 탑승, 사전 예약한 면세품 인도장에 도착하니 08:10분!!!  부랴부랴 갓난아기 주율이 전용 "슬리핑 백" 을 찾아서 보딩하러 가자마자 바로 탑승했다. 약기운 때문인지 비행기 타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01:00            학군단 집합

01:30            여수 출발

06:00            인천국제공항 도착

06:30~08:20   발권, 짐가방 붙이기, CIQ 통과, 면세품 수령

08:20~08:55   보딩

08:55~10:00   인천공항 출발, 상해 도착 

                   상해에 도착하자 마자 폭우가 쏟아졌다. 게다가 비행기 또한 게이트에 접속하지 않고 활주로에서 셔틀버스로 실어날라서 비를 피할 수 없었다. 잠시 동안 노출되었는데도 바지와 신발이 흠뻑 젖었다. 승무원들이 급히 신문지를 나눠주면서 비를 막으라고 했다.

10:00~11:40   CIQ통과, 짐찾기

                   비행기에 내리기전에 안내 방송을 듣고 짐찾는 벨트로 찾아갔건만 폭우 영향 때문인지, 1시간이 넘도록 가방을 기다렸다. 중국, 태국, 필리핀 밖에 못가봤지만 역시 우리나라 공항의 시스템이 세계 최고인 것 같다.

11:40~12:00   식당으로 이동

12:00~12:40   중식

  처음 간 곳은 중국 현지식 식당이다.  공항에서 봤던 많은 한국 분들도 식당에 계셨다. 음식에 향신료도 거의 넣질 않아 먹을 만했다.  그런데 난생 처음 중국 현지식을 먹는 후보생들은 향신료 냄새에 먹기전부터 질려서 많이 먹질 못했다. 이렇게 중국 현지식을 먹어보는 것도 문화체험이다. ㅎ

 

 

13:30~14:10   상해 박물관 관람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가이드와 상의한 결과 상해 박물관부터 가보기로 했다. 이곳은 4층 건물로서 1층 로비를 제외한 3개층에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대만국립박물관에 비하면 소장 유물들의 가치가 현저히 낮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문득 대만에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우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사람들이 많았다. 외국인보다 중국인들이 훨씬 많았는데 곧 방학이 끝나가는 시점이라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학습을 많이 왔다.

 

 

 

  로비의 안내데스크에서 무엇가를 신청하고 나눠준다.

 

 

 

이렇게 무식하리 만치 큰 (TV리모컨의 2배 길이) 단말기인데, 해당 유물앞에 가면 자동으로 설명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맨처음 4층으로 올라갔다. 중국 고대 옥기(옥작품)관이다. 옥으로 만든 각종 신상들도 많이 있다.

 

 

 

옥으로 섬세하게 조각한 선녀상이다. 크기도 매우 작다. 당나라때 작품이다.

 

 

산수에 사람들이 있는 작품이다. 청나라때 작품. 아마도 무릉도원을 표현한 것 같다. 중국인들의 옥사랑이 정말 대단했다.

 

 

이건 고대 비석, 각본을 떠서 함께 전시해 놓았다.

 

 

 

이렇게 층층마다 기념품 가게가 있다. 가격은 묻지마 정도로 매우 비쌌다.

 

 

 

이곳은 중국 고대 그림 전시관

 

 

 

우리나라 그림이 훨씬 예쁘다고 느껴졌다. 다만 그림의 규모나 크기는 대륙의 스케일만큼 크고 웅장한 것이 많았다.

 

 

 

여긴 각종 도자기와 신상 작품들 전시관이다.

 

 

 

관세음보살...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금색 도자기 이다. 그 문양에서 중국의 문화가 느껴진다.

 

 

 

  4층부터 2층까지 관람하고 1층으로 내려오면 출구쪽에 기념품 파는 곳이 있다. 중국의 왠만한 관광지의 구조가 이렇다. 항상 출구쪽에 기념품 가게가 있다. 사진의 도자기들 크기가 작은 편인데, 가격은 무지하게 비싸다. 그런데 예쁘긴 했다. 중국인들의 도자기 사랑은 대단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중국 3대 특산품이 도자기, 차, 비단이겠는가?

 

 

 

14:25~15:50   상해 남경로 탐방

상해 박물관 관람후 남경로로 이동했다. 우리나라 강남, 청담동 느낌이 났다.

 

 

 

  깨끗하고 넓은 인도 좌우측으로 각종 매장이 들어서 있었다. 여기서 시간 통제 지시를 오해한 일부 후보생들이 발생하여 계획된 시간보다 1시간이 지체되었다. 사실 이곳은 별로 볼 것도 없는 곳인데 말이다.

 

 

16:00~17:50   상해 옛거리 탐방

  상해 옛거리, 폭우가 쏟아지다 그쳤다. 남경로와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중국 드라마에서 한번쯤을 봤을 법한 건물양식이다.

 

 

 

   혈기 왕성한 후보생들에게 자유시간을 부여하고 간부님들과 함께 스타벅스로 갔다. 예전의 중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래도 이곳은 영어도 통하고 주문에도 아무 문제 없었다. 가격 또한 한국과 똑같은 수준이었다.

 

 

 

  옛거리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다. 이층건물로 찻집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원래는 이곳에서 3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주려고 했는데, 남경로 사건으로인해 시간을 많이 주지 못했다. 재밌는 것은 신발이 다 젖어버린 후보생들이 이곳에서 10위엔(2천원)주고 슬리퍼를 사서 신었는데  가격대비 품질에도 만족해서 절반이상이 샀다. 그리고 여행 끝나서 여수로 복귀하는 그날까지 주구장창 슬리퍼만 신고 돌아다녔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안개속에 가려진 동방명주가 보인다.

 

 

 

18:10~19:40   석식

  상해 중심지에 위치한 "우신정"이다 삼겹살 전문점이다.

 

 

 

  이곳의 음식은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특히 된장찌게의 맛은 대단했다. 이곳에서 우리 후보생들은 삼겹살을 무한 폭풍 흡입했다. 한국에서라면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다들 엄청난 양을 먹어댔다. 이곳에서 한국 소주(참이슬)도 파는데 가격이 무려 50위엔이다. 한국돈 한병에 만원! 테이블 당 한병씩 사줬는데 소주값만 4만원 나왔다.

 

 

 

20:00~20:20   외탄 야경 감상

  상해 황포강의 사이에 두고 강건너편엔 상해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마천루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들어서 있다. 또한 세계 굴지의 금융, 다국적 기업의 본부가 입주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 상해에 왔던 2011년, 병따게 처럼 생긴 건물 바로 옆에 짓고 있던 128층 건물이 완공되어 있었다.

 

 

 

  마천루 건물이 들어선 강 건너편, 그 반대편엔 서구 열강들의 침략을 받아 조차지로 빼았겼었던 곳에 그들이 지어놓은 옛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재밌는 것은 서구 열강들의 건축 양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점이다.

 

 

 

  2011년 처음 상해왔을때 타 보았던 반가운 황포강 유람선, 그뒤 마천루들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겨본다. ㅎ

 

 

 

  이곳 외탄 거리는 상해의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산책코스 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야경과 더불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 받는 곳이다.

 

 

 

  후보생들과 함께 단체 인증샷~!

 

 

 

 

20:20~21:00   이동, 상해 광동호텔 도착

우리가 상해 머물 동안 묶을 광동호텔이다.

 

 

 

깨끗하고 넓은 욕실^^

 

 

 

잘 정돈된 침대

 

 

 

빵빵한 에어컨까지 아주  맘에 들었다.

 

 

 

이렇게 1일차 여행 끝~!

Posted by 강철캡틴

  오늘은 실질적으로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고구려 오녀산성을 멀리서 관람하고 오녀산성 박물관을 둘러본뒤 단동, 압록강으로 이동한다.

 

 

 

  오녀산성을 버스에서 차창밖으로 관람했다. 움직이는 버스안이라서 예쁜 사진을 얻진 못했지만 이스라엘 맛사다 요새처럼 산정상이 평평하고 우물과 병력들의 주둔지 및 훈련공간 등이 조성되어 있다. 역시 이곳에서도 한국사람은 촬영이 절대 금지되어 있다. 이곳의 귀중한 사료들도 역시 동북공정의 희생양이 되어 있었다. 직접 가보면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어려운지 피부에 와 닿는다.

 

 

 

 환인에서 단둥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2시간 30분) 압록강 공원에 도착했다.

 

 

 

 여긴 단교 매표소이다. 중국답게 붉은 별, 혁명의 별이 눈에 확들어온다!

 

 

 

 6.25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간직된 압록강 단교이다.

 이렇게 걸어서 끊어진 곳까지 갈 수 있다. 철교의 뜨거움과 내리쬐는 햇볕에 계란이 익을 정도다.

 

 

 

 단교의 왼쪽으로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차량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아무때나 차량들이 오가는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 빈 차량으로 중국으로 입경하는 모습이다.

 

 

 

 압록강 단교를 배경으로 인증샷!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교수님과 함께!

 

 

 

내가 너무 존경하고 좋아하는 우리 단장님!

 

 

 

 

 

 

 

  저 강 건너편 오른쪽 파란건물이 신의주에 북한의 최고위층 자제들만이 온다고 하는 워터파크가 보인다.

 

 

 

실제로 어린아이들의 비명소리가 강건너 내가 서있는 단교공원 이곳까지 들려왔다.

 

 

 

 후보생들에게 조국분단의 현실을 체험시키기 위해서 현지에서 옵션상품으로 압록강 뱃놀이(???)를 했다.

 

 

 

이때 배를 타고 이동중인 북한 주민과 군인발견!!!

 

 

 

  카메를 잔뜩 당겨서 찍은 사진이다. 바로 강건너편에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이다.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성분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 산다고 한다. 또한 중국과 접경지역으로서 경제활동도 아주 활발한 곳이다. 우리가 타고 있는 유람선을 향해 북한 아이들이 돌을 던지면서 욕을 한다. 바로 이것이 분단된 우리 조국의 현실이다.

 

 

 

 

------------------포스팅 후기-------------------

  이렇게 5박 6일간의 여행기를 마칩니다. 1년이나 지나서 포스팅하는 이유는 당시 여행이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감히 글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여행 복귀후 지독한 몸살에 걸려서 고생도 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와서 글을 쓰면서 되돌아 보니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한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고구려 관련 유적지들은 모두 왜곡되어 중국의 지방정권, 소수민족의 역사로 전락한 현실에 가슴 아팠습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또한 우리가 잃어버린 영토라는 사실에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 우리 젊은이들께 부탁합니다. 일제 식민사관과 중화 사대주의에 쩌든 역사관을 벗어던지고, 민족사관과 민족의식으로 무장하여 조국통일과 잃어버린 선조들의 땅을 반드시 되찾는 주역이 되어주길 진심을 담아 말씀드립니다.

 

 

 

 

 

Posted by 강철캡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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